키작고 수줍던 한국 소녀, 세계 최고 '물리학회장'이 된 진짜 비결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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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작고 수줍던 한국 소녀, 세계 최고 '물리학회장'이 된 진짜 비결 공개했다

모교인 하양여중에 금의환향한 김 교수가 연설 도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 출처 - 영남일보모교인 하양여중에 금의환향한 김 교수가 연설 도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 출처 - 영남일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거쳐 간 영광의 자리, 미국 물리학회 회장에 선정된 최초의 한국인이 화제다.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난 김영기 교수는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진짜' 한국인이다. 영어도 서툴렀던 동양인 여성으로서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평가받는 물리학회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공개하였다.

 

경상북도 시골 마을에서 백인들 밀어내고 회장 자리까지

출처 - 조선일보출처 - 조선일보

김영기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는 1962년 대구 인근 경산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태어날 때부터 키가 작아 놀림도 받았다는 그녀는 지금 세계 물리학계의 수장 자리이자 5만여 명의 회원을 대표하는 미국 물리학회 회장단이 되었다. 

단지 학회 업무뿐만 아니라 입법부의 입법 활동과 행정부의 과학 기술과 관련된 자문 위원 역할, 미래 아이들을 위한 대중화 등 다양한 임무를 책임져야 하는 직책인 만큼 선발 기준 역시 매우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다.

물리학회의 추천위원회가 먼저 엄정한 기준을 세워 2명의 회장 후보를 선정하면, 약 5만 명의 회원들이 투표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게 된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선출된 차기 회장이 바로 김영기 교수다. 

뛰어난 연구 성과는 물론이고 물리학을 대표하는 자로서 대중에게 올바른 교육관을 심어줄 수 있어야하며 학계의 발전에도 이바지하여야 하므로 선출된 직후 바로 회장직에 오르지는 못한다. 회장단에 선정되면 4년에 걸쳐 처음에는 부회장으로 시작하여 2024년에 회장에 오르도록 체계가 갖춰져 있다.

처음 후보 제의가 왔을 때 그 무게감 때문에 직책을 고사했다고 하는 그녀는 최종 제의를 수락한 이유 역시 책임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백인 남성이 주류인 물리학계에서 최초의 여성 한국인 회장이 탄생한다는 것은 저만의 성취가 아닌 다른 한국인 여성들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저로 인해 여성 과학자의 영역이 조금 더 넓어질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도전"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미국은 다인종 국가이지만 속사정은 인종 차별과 엘리트주의가 심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김 교수 역시 소수자인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유리 천장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마이너스 요인에 좌절하기보다 자신을 한 번 봐도 기억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승화하여 이를 극복하였다. 미국 물리학회 130년의 역사 중 중국인 출신이 한 번 회장직에 오른 이후로 첫 아시안이라는 김 교수는 오로지 실력과 성과로 인종과 성별의 벽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한국에 있는 연구원들, 해외 나와서 부딪쳐 보길

어려움을 극복하고 얻는 강인함이 성공 비결

출처 - 조선일보출처 - 조선일보

경산 작은 마을에서 유학파들도 견디기 힘든 경쟁을 뚫고 당당하게 시카고대 석좌 교수를 차지한 그녀에게 어쩌다 유학 갈 결심을 했는지 물었다. 의외로 김 교수는 대학 때까지 공부에 큰 취미가 없다가 졸업반이 되어서 관심이 갔다고 한다. 영어도 서툴렀고 아무 준비도 되지 않아 고려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로렌스 버클리대 국립연구소에서 첫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를 거쳐, 현재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세계 입자 물리 연구의 선두자 역할을 하는 미국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에서도 2006년에서 2013년까지 부소장을 역임하면서 힉스 입자 연구에 큰 공을 세우며 학계에도 이름을 알렸다. 

1990년부터 페르미 연구소의 ‘양성자 및 반양성자 충돌실험그룹’에 참여하면서 진취적인 연구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2004년에서 2006년까지 CDF 공동대표로 선출되어 12개국에서 온 850여명의 과학자들을 이끌어 연구하기도 하여 훌륭한 리더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현재 그녀는 우주의 시작점인 궁극적인 물질과 법칙을 연구하는 입자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는 외롭고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을 탈피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동료, 후배 과학자들에게 늘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된 그녀에게 국내에서 계속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구하자 "한국인들이 해외에 나오면 잘한다. 연구 시설도 더 나은 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백그라운드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야가 넓어지는 게 있다. 진취적인 연구를 위해선 어려움을 부딪쳐 극복해 보는 경험과 정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강해지면 성공할 수 있다"며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한국인들이 개인적으로는 우수하지만 왜 집단으로는 처지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묻자 "우선 한국은 타 국가에 비해서 학문의 시작 자체가 늦었다. 빠르게 따라잡고 성장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차곡차곡 내공을 쌓으며 발전한 것과 비교할 때 문화적으로 뒤처지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며 아쉬운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끈기와 인내가 가장 중요

그녀만의 슬럼프 극복 비결은?

출처 - 조선일보출처 - 조선일보

그녀의 성취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연구는 마라톤과 같다. 끈기와 인내가 가장 중요하다", "힉스 입자와 같은 중요 요소를 발견하는 데도 100년이 걸렸다. 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학문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학생들의 재능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할 것을 강조했다. 

"자기가 관심 있고 잘하는 분야가 무엇이고, 재밌는 게 뭔지 등을 생각해보고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것이 과학이다"라는 말과 함께 미지의 분야를 탐구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지루해하지 않고 끈질긴 노력으로 같은 실험을 반복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웃으며 슬럼프에 깊게 빠진 적은 없다고 답하기도 하였다. 다만 연구, 실험을 반복하다가 지루하게 느껴지면 하나에 매몰되기보다 데이터 분석이나 페이퍼 작업도 하면서 분야를 옮겨 흥미를 이어갔다고 하였다.

교수 생활을 하며 젊은 학생들과 항상 같이 있으며 그 에너지를 받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강의실에 앉아있는 눈이 초롱초롱한 학생들을 보면 교수인 내가 태만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며 책임감 넘치는 성격도 보여주었다. 

또한 연구를 진행하는 동료 교수나 연구원들을 위해서는 "연구가 제대로 안 풀린다고 계속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것 또한 비효율적이다. 가끔은 모든 걸 멈추고 바깥에 나가서 맑은 공기도 쐬어야 하고 체력도 길러야 오랫동안 반복할 수 있다. 운동이나 다른 취미를 하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는데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나도 주말에는 연구를 멈추고 호수를 1~2시간씩 걸으려고 한다"며 멘탈 관리에 도움되는 팁을 남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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